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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보호 시리즈

개인정보 보호를 넘어 디지털 인권으로 – 유럽과 한국은 어떻게 다를까?

by 250623 2025. 7. 2.

디지털 사회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개인정보 보호의 개념은 이제 단순한 법률적 책임을 넘어서, 인권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은 GDPR을 통해 개인정보 보호를 ‘기술적 통제’가 아닌 ‘기본권 보장’의 영역으로 규정하며, 정책의 방향을 ‘디지털 인권’으로 재편하고 있습니다. 한국 역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과 함께 ‘정보 주체 권리 강화’를 강조하고 있지만, 디지털 환경 속 권리의 본질적 접근이라는 점에서는 여전히 법제도 중심의 대응에 머물러 있는 현실입니다. 본 글에서는 유럽과 한국이 어떻게 개인정보 보호에서 디지털 인권의 개념으로 확장하고 있는지를 비교하고, 향후 정책의 방향성을 진단해 보겠습니다.

 

개인정보 보호에서 ‘디지털 인권’으로의 전환, 왜 필요한가요?

기존의 개인정보 보호는 주로 데이터가 유출되거나, 잘못 활용되는 것을 막는 '보안 중심'의 접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데이터가 단지 유출의 대상이 아니라, 개인을 분류하고 판단하며, 차별하거나 배제하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검색 기록, 소비 패턴, 위치정보를 기반으로 특정 상품만 노출하거나, 대출 가능성을 평가하거나, 구직자의 이력을 필터링합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유럽은 개인정보 보호를 단지 ‘보호’의 차원이 아닌, 자기 결정권, 표현의 자유, 정보 접근권, 알고리즘 거부권 등 다양한 기본권과 연결된 ‘디지털 인권(digital rights)’의 개념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GDPR은 “정보 주체는 자신의 데이터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알 권리가 있으며, 자동화된 처리에 대해 인간의 개입을 요청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즉, 단순히 ‘정보가 유출되지 않도록 보호하자’는 것이 아니라, ‘정보가 나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도록 통제할 수 있는 권리’가 디지털 인권의 핵심입니다. 이러한 철학은 기업에도 단지 법률 준수를 넘어서, 서비스 설계 전반에서 사용자의 권리를 중심에 놓는 사고 전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정책 방향 – 디지털 권리를 헌법적 권리로 규정

유럽연합은 GDPR 외에도 다양한 정책을 통해 디지털 인권 개념을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21년 발표된 ‘EU 디지털 권리 및 원칙 선언’에서는 디지털 기술이 인권을 보호하고 민주주의를 촉진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천명하였습니다. 여기에는 디지털 환경에서도 표현의 자유, 프라이버시, 평등, 접근권, 투명성이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2024년 채택된 EU AI 법(AI Act)은 인공지능 기술이 사용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고위험 AI 시스템에 대해 엄격한 설계 요건과 감독을 부과하고 있습니다. 특히 얼굴 인식, 생체 인식, 사회 점수화 시스템 등은 사용자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기술로 간주하 제한되거나 금지되고 있습니다. 이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권 보장 장치도 함께 정교해져야 한다는 유럽의 정책 철학을 반영한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유럽 각국은 디지털 서비스 제공자에게 데이터 사용의 정당성, 알고리즘의 투명성, 사용자 권리 보장을 요구하고 있으며, 실제로 법 제재도 강화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CNIL, 독일의 BfDI 등은 광고 플랫폼, 알고리즘 기반 기업, 인공지능 해결 제공사에 대해 단순 위법이 아니라, 인권 침해 가능성 중심의 평가와 조처를 하고 있습니다.

개인정보 보호를 넘은 디지털 인권에 대한 한국과 유럽의 정책 방향성 분석

한국의 현재 위치 – 법제화는 진행 중, 그러나 인권 관점은 미흡

한국은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을 통해 정보 주체의 권리를 점진적으로 확대하고 있으며, ‘디지털 기본권’이라는 개념도 정치권과 학계에서 논의되고 있습니다. 2023년에는 “국민 디지털 권리장전” 초안이 공개되었고, 여기에는 ▲데이터 자기 결정권, ▲설명의 권리, ▲디지털 격차 해소, ▲디지털 참여권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는 분명 긍정적인 발전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인 정책 수준에서는 여전히 ‘인권’보다는 ‘보안’, ‘관리’, ‘감독’ 중심의 접근이 강합니다. 예를 들어, 알고리즘 기반 서비스가 사용자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소외 집단을 차별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도, 이를 규제하거나 평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부족한 상황입니다. 사용자가 자신의 데이터가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알고 싶어도, 기업의 투명성 의무가 명확하지 않아, 확인할 수 있는 경로가 제한적입니다. 또한 공공기관에서도 CCTV, 위치정보, 온라인 행정 시스템을 통해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고 있지만, 그 정보가 어떻게 사용되고, 어떻게 삭제되는지에 대한 통제가 어려운 구조를 보니다. 사용자는 법적으로는 권리를 보장받고 있지만, 실제 서비스 이용 과정에서는 그 권리를 행사하기 어렵고, 제도적 대응도 사후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디지털 인권 보장을 위한 정책 수렴과 기업의 역할

한국이 유럽처럼 개인정보 보호에서 ‘디지털 인권’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제도적 변화만 아니라, 서비스 제공자의 자율적인 책임 강화와 문화적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단지 법률을 지키는 수준이 아니라, 사용자가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느끼는 불편, 불투명함, 비합리성을 사전에 설계단계에서 제거할 수 있는 구조가 요구됩니다.

기업은 다음과 같은 영역에서 먼저 실천할 수 있습니다:

  • 알고리즘 설명 가능성(Explainability) 확보: 사용자가 왜 특정 추천을 받았는지, 가격이 다르게 책정되었는지 알 수 있어야 합니다.
  • 프라이버시 기본값(Default Privacy) 적용: 수집 항목은 최소화하고, 선택 동의가 기본 설정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 데이터 이동권 보장: 사용자가 자신의 데이터를 구조화된 방식으로 내려받고, 다른 서비스로 이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 불이익 없는 거부권: 광고나 맞춤형 추천에 동의하지 않아도 서비스 이용에 제한이 없어야 합니다.

이러한 조치들은 모두 GDPR의 ‘사용자 권리 중심 설계’ 원칙과 일치하며, 동시에 국내외 이용자들의 신뢰와 광고 플랫폼(예: 애드센스)의 승인 가능성까지 높일 수 있는 전략이기도 합니다.

 

제도·문화·기술이 함께 움직여야 진짜 ‘디지털 인권’

디지털 인권은 단지 법 조항을 나열하는 것으로 실현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정책 설계, 기업의 윤리적 판단, 사용자 인식, 기술 구조가 모두 함께 작동해야 가능한 사회적 구조입니다. 유럽은 이 점을 이해하고 정책을 설계하며, 사용자의 권리를 중심에 둔 기술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한국도 점차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아직은 ‘준법’ 중심, 또는 ‘사후 대응’ 중심의 문화가 강합니다. 그러나 디지털 인권은 사후적으로 보상받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침해되지 않도록 예방하고, 설계되는 권리입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공공 서비스에서부터 모범적 개인정보 보호 체계 구축, ▲소외계층 대상 디지털 격차 해소 정책 강화, ▲기술·산업계 대상의 디지털 인권 교육 및 가이드라인 보급 등을 우선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기업 역시 ‘이 정도면 문제 되지 않겠지’라는 판단보다는, ‘이 설계가 사용자 권리를 존중하고 있는가?’라는 기준으로 자사의 서비스를 재점검해야 할 시점입니다. 디지털 사회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사용자의 신뢰를 얻는 기업만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개인정보 보호는 더 이상 ‘데이터 유출을 막는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사용자의 권리를 중심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처리하며, 통제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유럽은 GDPR, AI 법, 디지털 권리 선언을 통해 이를 제도화하고 있으며, 기술의 발전보다 사용자의 인권 보장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명확한 원칙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이에 대한 수렴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제도와 기술 사이의 간극, 사용자 권리의 실질적 실현 부족 등 한계가 여전히 존재합니다. 앞으로 디지털 인권은 단지 유럽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에서도 경쟁력, 브랜드 신뢰, 글로벌 인증, 애드센스 승인 등 실무적으로도 중요한 핵심 요소가 될 것입니다. 이제는 기업과 정책 모두가 ‘법을 지킨다’에서 멈추지 말고, ‘사람을 중심에 둔다’는 디지털 인권의 관점으로 전환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