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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보호 시리즈

유럽 GDPR vs 한국 개인정보보호법 – 수렴 가능성과 한계

by 250623 2025. 7. 2.

GD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은 2018년 유럽연합에서 시행된 이래, 전 세계 디지털 환경에서 개인정보 보호의 기준을 사실상 선도하고 있습니다. 사용자의 정보에 대한 자율성과 통제권을 핵심 가치로 삼으며, 글로벌 기업 설계부터 법 준수까지 포괄적인 책임을 부과하는 이 강력한 규제는 '디지털 시대의 인권 헌장'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이러한 GDPR의 기준을 따라가야 할까요? 현재 한국은 자체적으로 개인정보보호법을 보유하고 있고, 여러 차례 개정을 통해 국제 기준에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한국과 GDPR의 정책 차이점을 비교하고, 정책 수렴의 현실성과 필요성, 그리고 기업 입장에서의 대응 전략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한국은 GDPR을 따라가야 하는지에 대해 프라이버시 정책 수렴 가능성 분석

GDPR은 ‘인권 중심 설계’를 목표로 합니다.

GDPR은 단지 개인정보를 기술적으로 보호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개인의 권리를 중심으로 설계된 전체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용자는 단순히 자신의 정보가 어떻게 수집되었는지를 아는 것만 아니라, ▲왜 수집되었는지, ▲어디에 저장되고, ▲누구에게 제공되었으며, ▲원하면 삭제를 요청할 수 있는 ‘잊힐 권리’까지 갖게 됩니다.

또한 GDPR은 ‘동의’를 단지 클릭 한 번으로 갈음하지 않습니다. 모든 동의는 자유롭고, 구체적이며, 정보에 입각하고, 명시적이어야 한다는 네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만 유효하다고 판단합니다. 따라서 기업은 마케팅, 추천, 광고, 분석 등 각 목적에 따라 별도 동의를 받아야 하며, 사용자가 이를 거부하더라도 서비스 이용에 불이익이 없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GDPR은 기업에게 ‘책임성(accountability)’을 요구합니다. 이는 법을 지키는 행위를 넘어서, 법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할 책임까지 기업이 스스로 져야 한다는 개념입니다. 즉, 기업은 언제 어떤 데이터를 누구로부터 어떤 근거로 수집했는지를 문서로 보관하고, 감독기관이 요청할 경우 즉시 제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GDPR은 법률 자체가 디지털 시대의 기본권, 인권, 정보 주체 중심의 기술 설계라는 철학을 기반으로 구축되어 있습니다.

 

한국은 부분적으로 유사한 구조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개인정보보호법도 GDPR과 유사한 여러 원칙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2020년과 2023년 개정에서는 개인정보의 제3자 제공 동의 절차 강화, 민감정보 보호 기준 명확화, 개인정보 영향평가 제도화, 정보 주체의 삭제 요청권 도입 등이 포함되었습니다. 특히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중앙 독립기관으로 출범한 이후, 감독 체계 역시 점차 GDPR 구조에 근접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 역시 ‘책임성’ 개념을 일정 부분 수용하고 있습니다. 기업은 개인정보 처리 방침을 공개하고, 내부적으로 개인정보 처리 이력을 관리해야 하며, 일정 규모 이상의 정보처리자는 개인정보 보호 책임자(DPO)를 지정해야 합니다. 이러한 부분은 GDPR의 책임성 원칙과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점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GDPR에서는 사용자 권리를 중심으로 설계 구조를 바꿔야 한다면, 한국에서는 법률을 준수하면 그 외 구조는 기업 자율에 맡기는 방식이 더 일반적입니다. 또한 사용자가 동의를 거부할 경우, 일부 서비스에서는 실질적으로 이용이 제한되거나, 서비스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는 자유로운 동의가 아닌, 조건부 동의 구조에 머무르고 있다는 비판이 가능하게 합니다.

 

수렴 가능성은 높지만, 실질적 구현에는 제약이 있습니다.

한국이 GDPR과 유사한 방향으로 개인정보 정책을 발전시키고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특히 한국은 OECD, G7, APEC 등 글로벌 협의체에서 '개인정보 국외 이전 협력국'으로 인정받기 위해 지속적인 정책 정비를 추진하고 있으며, 2021년에는 EU로부터 GDPR과 유사한 수준의 적정성 평가를 부분적으로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수렴을 위해서는 단순히 법조문만이 아니라, 운영 방식과 기술 설계 철학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도전이 따릅니다. 현재 한국 기업들은 서비스 운영에 있어 개인정보를 중심 설계 요소로 고려하기보다는, 사후적으로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한 보조적 고려 사항으로 다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결과, 사용자가 자신의 데이터를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구조는 아직 충분히 마련되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데이터 열람이나 삭제 요청을 할 때, 유럽에서는 이를 계정 내 기능을 통해 즉시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반면, 한국에서는 고객센터에 따로 연락하거나, 일정 기간 내 수동으로 처리하는 방식이 대부분입니다. 이러한 방식은 결국 사용자 권리가 ‘법률상의 권리’에 머무르고, 현실적으로는 불편하고 비효율적인 구조로 전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이 GDPR을 실질적으로 수렴하려면, 제도적 유사성을 넘어서 서비스 설계 단계에서부터 권리 중심의 UX(User Experience)와 데이터 처리 흐름을 설계해야 할 것입니다.

 

기업 입장에서 수렴 준비가 필요한 이유

한국의 기업들은 글로벌 서비스를 운영하거나, 해외 광고·마케팅 파트너십을 추진할 경우, GDPR을 포함한 국제적인 개인정보 기준을 자연스럽게 따라야 하는 환경에 놓이게 됩니다. 특히 구글, 메타, 아마존, 틱톡과 같은 플랫폼과 연동하거나, 유럽 고객을 대상으로 서비스할 경우 GDPR을 준수하지 않으면 비즈니스 자체가 불가능해집니다.

뿐만 아니라, 구글 애드센스나 애널리틱스, 유튜브 광고 수익을 운영하는 웹사이트들도 개인정보 보호 정책과 사용자 통제권 보장 여부가 승인 심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애드센스는 명시적으로 ‘GDPR 등 주요 데이터 보호 기준에 맞는 동의 수단’을 요구하고 있으며, 쿠키 사용에 대한 상세 고지 및 거부 기능이 없을 경우 광고 게재가 제한되거나 승인이 거부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기준만을 고려한 개인정보 보호 방침은 글로벌 비즈니스에서 취약점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 기업들은 법적 의무를 넘어서, ▲데이터 수집 목적의 구체화 ▲기능별 동의 분리 ▲사용자 정보 열람 및 삭제의 시스템화 ▲쿠키 관리 솔루션 도입 등 국제 기준에 맞춘 서비스 설계 전략을 선제적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GDPR은 단지 유럽의 법률이 아니라, 글로벌 디지털 환경에서 사용자 권리를 중심으로 기술과 서비스를 설계해야 한다는 철학을 반영한 국제 기준입니다. 한국은 이와 유사한 방향으로 제도 정비를 진행하고 있으며, 법률 체계도 일정 부분 수렴하고 있지만, 아직 사용자 통제권 보장이나 기술적 구현 수준에서는 현실적 격차가 존재합니다.

앞으로 디지털 산업이 더 성장하고 글로벌 서비스가 확대될수록, 개인정보 보호 기준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것입니다. 한국 기업이 GDPR에 실질적으로 수렴하기 위해서는 단지 법을 지키는 수준을 넘어, 사용자 권리를 중심에 두고 서비스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문화적 전환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전환은 기업 신뢰도 향상, 국제 인증 획득, 광고 승인 성공률 제고 등 다양한 실질적 성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지속 가능한 디지털 비즈니스의 핵심 경쟁력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