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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보호 시리즈

개인정보 보호법, 미국은 분산·한국은 통합? 구조적 차이 분석

by 250623 2025. 7. 3.

미국은 세계 최대의 IT 산업 강국이며, 구글, 메타, 아마존, 애플 등 글로벌 플랫폼 기업의 본거지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연방 수준에서 모든 산업과 사용자에게 공통 적용되는 ‘통합 개인정보보호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반면 한국은 2011년 「개인정보보호법」을 통해 공공과 민간을 아우르는 단일 법제를 구축한 상태입니다. 이 차이는 단지 입법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헌법 구조, 정치 철학, 규제 전통, 업계 로비 구조 등 복합적인 요소가 얽혀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미국이 통합 개인정보보호법을 갖추지 못한 구조적 이유와 그것이 한국과 어떤 구조적 차이를 만들어내는지를 상세히 분석해 드리겠습니다.

 

미국은 '연방주의' 구조로 인해 통합 입법이 어렵습니다.

미국은 연방제(federalism) 국가입니다. 연방정부와 각 주(State) 정부가 독립된 입법·행정·사법 권한을 보유하고 있으며, 연방정부가 모든 영역에 일괄적으로 법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습니다. 특히 개인정보, 소비자 보호, 계약, 민사책임 등은 대부분 주법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연방 차원의 개인정보보호법을 제정하려면 50개 주와 정치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실제로 각 주는 자신들의 가치와 시장 환경에 따라 고유한 개인정보보호법을 제정해 왔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캘리포니아의 CCPA/CPRA이며, 그 외에도 버지니아, 콜로라도, 코네티컷, 유타 등 여러 주가 자율적으로 법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방정부가 "하나의 기준으로 통합한다"라고 나설 경우, 주 정부의 입법 권한을 침해한다는 정치적 저항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와 달리 한국은 중앙정부가 입법·집행·감독 권한을 모두 보유한 단일 국가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개인정보보호법처럼 통합된 법체계를 수립하고 일관된 기준을 운영하기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은 연방 차원의 통합 개인정보보호법이 없는지에 대한 규제 철학과 정치 구조의 이해

 미국은 산업별로 개별법을 운하는 전통이 강합니다.

미국에서는 개인정보 보호가 통합된 권리라기보다는, 분야별로 필요한 만큼 보호하는 실용주의적 접근 방식을 채택해 왔습니다. 의료 정보는 HIPAA, 금융 정보는 GLBA, 아동 정보는 COPPA, 교육 데이터는 FERPA 등으로 관리되며, 각 법은 특정 업계에 특화된 최소한의 개인정보보호 기준을 제공합니다.

이러한 구조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집니다:

  • 표준화되어 있지 않음
  • 이용자 권리가 제한적
  • 동의 방식이나 고지 방식이 업계마다 상이
  • 법 적용 범위가 좁음 (특정 기관/업체에만 적용)

예를 들어 HIPAA는 병원과 보험사 등 의료기관에만 적용되며, 피트니스 앱이나 웨어러블 기기에서 수집되는 건강 정보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데이터 보호는 법의 보호를 받는 ‘주체’에 따라 달라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시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일반법을 만들기 어려운 것입니다. 반면 한국은 개인정보의 주체가 누구인지, 어떤 기술로 수집됐는지와 무관하게 개인정보 전체에 단일 법률을 적용하는 포괄적 모델을 채택하고 있어, 법적 일관성과 사용자 권리 보장 측면에서 명확한 장점이 있습니다.

 

IT 업계와 자유시장 철학이 강력한 저항 요인입니다.

미국에서 통합 개인정보보호법 제정이 지연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강력한 IT 기업들의 로비와 자유시장 경제 철학입니다. 구글, 메타, 아마존, 애플 등 거대 플랫폼 기업들은 매년 막대한 로비 자금을 의회에 투입하고 있으며, 이들은 “엄격한 연방 규제는 혁신을 저해하고 경제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논리를 제시합니다. 특히 이들 기업은 자율 규제를 선호하며, 내부 방침이나 외부 감사로도 충분히 책임을 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미국은 GDPR처럼 ‘책임성(accountability)’을 법으로 강제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율 규제를 잘 운영하는 기업은 시장에서 인정받는다”는 시장 중심의 자기 통제 모델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연방 차원의 통일 법안을 만들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특히 보수 성향의 정치 세력은 개인정보보호 강화가 기업 활동을 과도하게 제약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으며, 실리콘밸리의 정치적 영향력도 이를 더욱 강화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이해관계의 복잡성도 큰 장벽입니다.

미국 의회 내에서는 수년 전부터 통합 개인정보보호법 논의가 계속되고 있지만, 양당 간의 합의 실패로 인해 지금지 실질적인 진전이 없는 상황입니다. 민주당은 GDPR 수준의 강력한 사용자 권리 보장과 강제 조항을 포함하자고 주장하는 반면, 공화당은 산업 보호와 자율 규제 중심의 완화된 법안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전동의(opt-in)'과 '사후 거부(opt-out)' 중 어떤 방식을 기본 원칙으로 삼을 것인지, 연방 법이 주법보다 우선할 수 있는지(즉, preemption 문제)도 첨예한 갈등 지점입니다. 캘리포니아처럼 진보적인 개인정보보호법을 이미 보유한 주는 연방 법이 더 약할 경우 자신들의 기준이 무력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정치적 이해관계와 지역 간 정책 격차가 얽혀 있기 때문에, 미국은 아직도 GDPR과 같은 연방 차원의 통합 개인정보보호법을 제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미국은 ‘분산된 보호’, 한국은 ‘통합된 보호’로 나뉘게 됩니다.

결국 위에서 살펴본 구조적, 정치적, 산업적 이유로 인해 미국은 현재 50개 주 + 산업별 개별법 + 기업 자율 규제라는 다층적 보호 구조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는 매우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개인정보보호법」 하나로 공공과 민간, 온라인과 오프라인, 일반 데이터와 민감정보를 모두 포괄하며, 개인정보보호위원회라는 단일 감독기관이 이를 일괄적으로 관리합니다. 이 구조는 이용자에게는 명확한 권리와 절차를, 기업에는 예측할 수 있는 법적 기준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물론 미국도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GDPR에 준하는 강력한 법률을 도입하고 있으며, 향후 연방 차원의 입법 논의도 계속될 예정입니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미국은 여전히 분산형 규제, 한국은 중앙집중형 규제라는 구조적 차이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이 지까지 연방 차원의 통합 개인정보보호법을 갖추지 못한 이유는 단순히 입법 지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미국 사회가 오랫동안 유지해 온 연방주의, 자유시장 철학, 산업 중심 정책, 정치적 이해 충돌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반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중앙집중적인 국가 구조와 인권 중심의 정책 철학을 바탕으로 단일 법률을 운영할 수 있는 기반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개인정보 보호 체계의 통일성과 실행력 면에서 분명한 강점이 됩니다. 이러한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한국 기업이 글로벌 비즈니스를 준비하거나, 미국 기반 플랫폼(예: 구글 애드센스)과의 연동을 고려할 때 매우 중요한 배경지식이 됩니다. 다음 편에서는 미국의 자율 규제 구조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FTC의 역할과 한계는 무엇인지를 상세히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