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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보호 시리즈

데이터 보호 영향평가(DPIA) vs 개인정보 영향평가(PIA), 유럽과 한국의 규제 차이

by 250623 2025. 6. 25.

 

디지털 시대에 데이터는 자산이자 위험이기도 하다. 기업과 기관이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프라이버시 침해 위험을 사전에 점검하고 예방하기 위한 제도가 바로 '데이터 보호 영향평가(DPIA)'와 '개인정보 영향평가(PIA)'다. 이 제도는 개인정보 처리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요소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그에 대한 대응책을 미리 수립하기 위한 사전 점검 장치다. 유럽은 GDPR을 통해 DPIA를 명문화하여 법적으로 의무화하고 있으며, 이 평가 없이 개인정보를 대규모로 처리하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PIA를 중심으로 일부 공공기관에만 제한적으로 적용하고 있어, 제도의 강제력과 범위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본 글에서는 유럽의 DPIA와 한국의 PIA를 개념, 법적 근거, 적용 대상, 실제 사례 측면에서 심층 비교하고, 향후 한국 제도의 개선 방향까지 함께 제시한다.

 

유럽 데이터 보호 영향평가(DPIA)와 한국 개인정보 영향평가(PIA) 규제

 

DPIA와 PIA란 무엇인가? 개념 비교

DPIA(Data Protection Impact Assessment)는 GDPR 제35조에 의해 정의된 제도로, 개인정보 처리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고위험(high risk)을 사전에 식별하고, 이를 줄이기 위한 조치를 마련하는 평가 프로세스다. 이 제도는 단순한 보안 점검이 아닌, 개인 프라이버시에 대한 영향 전체를 분석하는 것으로, 기술적·조직적 보호 대책까지 포함한 종합적 평가다. DPIA는 개인의 권리와 자유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처리를 수행할 경우 반드시 실시해야 하며, 이를 하지 않으면 GDPR 위반으로 간주되어 과징금 대상이 된다.

 

반면 PIA(Personal Information Impact Assessment)는 한국 개인정보보호법 제33조에 기반한 제도로, 개인정보를 자동화 시스템을 통해 처리하거나, 대규모로 수집·활용하는 경우 사전에 위험을 분석하는 절차다. 그러나 한국의 PIA는 공공기관만을 대상으로 적용되며, 민간 기업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또한 법적 의무보다는 형식적 준수를 위한 평가서 작성이 중심이며, 실제로는 사후 대응 중심의 운영이 많은 편이다. 이처럼 DPIA와 PIA는 모두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수단이지만, 법적 강제력, 적용 범위, 평가 방식 등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법적 근거 및 적용 대상의 차이

GDPR은 제35조를 통해 DPIA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다음 조건 중 하나라도 해당되면 반드시 DPIA를 수행해야 한다:

  • 자동화된 의사결정(예: 프로파일링)
  • 민감정보(건강, 성적 취향, 정치 성향 등) 대규모 처리
  • 공공 접근성이 보장된 공간에서의 체계적인 감시(예: CCTV, 위치 추적 등)

뿐만 아니라 GDPR은 DPIA를 단순 내부 보고서로 끝내지 않고, 필요시 감독기관에 제출하거나 사전 협의까지 진행해야 한다. 이는 단지 기업 내부의 위험 평가를 넘어서, 사회적 투명성과 공공책임까지 고려한 절차라 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의 PIA는 개인정보보호법 제33조 및 시행령 제35조에 따라 운영되며,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이 개인정보파일을 운영하려 할 때 일정 기준에 부합하면 영향평가를 수행해야 한다. 하지만 민간 기업은 법적 대상이 아니며, 실제 PIA 수행률도 낮은 수준이다. 또한 감독기관에 제출하는 보고서 역시 형식적인 내용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구체적인 위험 통제 조치는 법적으로 강제되지 않는다.

 

평가 절차 및 실제 실행력 비교

DPIA는 매우 구체적인 실행 절차를 따른다. 우선 기업은 개인정보 처리 목적, 처리 방식, 저장 수단, 보유 기간, 정보 제공자 등 모든 처리 항목을 문서화하고, 각 항목에 대한 리스크를 평가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리스크가 개인의 권리와 자유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며, 이때 법률적, 기술적, 윤리적 위험요소를 모두 고려한다. 이후 위험을 줄이기 위한 대책을 포함한 개선계획을 작성하고, 필요시 유럽의 감독기관(DPA)에 사전 협의를 요청한다. 특히 고위험 평가가 내려졌음에도 조치가 미흡한 경우, 감독기관은 해당 처리를 중단시킬 수 있다.

 

반면 한국의 PIA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제공하는 양식에 따라 문서를 작성하는 방식이며, 형식적 항목 체크와 간단한 의견 기재가 주를 이룬다. 실제로 각 항목에 대한 리스크 분석이나 법률적 타당성 검토는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대부분은 ‘자체 평가서’로 끝나며 사후 조치도 부족하다. 특히 PIA가 의무화된 상황에서도, 형식적으로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그치는 기관이 많다는 점에서,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감독기관의 권한과 제재 강도

GDPR 하에서 유럽의 각국 데이터 보호 기관(DPA)은 DPIA 미이행 또는 부실한 이행이 있을 경우,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할 수 있다:

  • 평가 재수행 요구
  • 개인정보 처리 중지 명령
  • 과징금 부과 (최대 연매출 4% 또는 2천만 유로 중 큰 금액)

실제로 프랑스 CNIL, 독일 BfDI, 아일랜드 DPC 등은 여러 기업에 대해 DPIA 미이행을 이유로 제재를 가한 바 있다. DPIA는 단지 형식적 보고서가 아니라, 기업 경영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리스크 관리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PIA 관련 위반에 대해 과태료 또는 시정명령 정도의 조치를 취할 수 있으나, 실질적 집행 사례는 매우 적다. 특히 PIA 수행 여부 자체가 감시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는 수행하지 않아도 처벌받지 않는 구조다. 이로 인해 PIA는 법적 의무이긴 하지만, 규제의 실질성이 결여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사회적 인식과 기업 내부 영향

유럽에서는 DPIA가 ‘법적 의무’인 동시에, 기업 경영의 중요한 리스크 관리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AI, 빅데이터, 자동화 마케팅 등 고위험 기술을 사용하는 기업일수록 DPIA는 사전준비의 핵심이 되며, 법무팀, 기술팀, 경영진이 모두 참여하여 ‘책임 있는 기술 운영’을 위한 기반으로 작동하고 있다. 또한 DPIA 수행 여부는 기업의 사회적 신뢰도와도 직결되며, ESG 평가에서도 긍정적 요소로 간주된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PIA가 기업 내부에까지 문화적으로 확산되지 않았다. 공공기관조차 PIA를 ‘외부 컨설팅 맡겨서 처리하는 보고서 작성 의무’ 정도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많고, 민간 부문에서는 아예 인지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차이는 결국 개인정보 보호라는 개념이 유럽에서는 ‘경영책임’이자 ‘공공윤리’로 인식되는 반면, 한국에서는 ‘행정 절차’로 취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데이터 보호 영향평가(DPIA)와 개인정보 영향평가(PIA)는 모두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사전 점검 제도지만, 철학, 법적 강도, 실효성, 운영 방식에서 완전히 다른 구조를 갖고 있다. 유럽은 GDPR을 통해 DPIA를 명확히 의무화하고, 감독기관과 기업 간 상호 감시와 협력 체계를 형성하며 개인정보 리스크를 실질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형식적 영향평가에 그치며, 민간 부문에 대한 적용과 사후 관리 체계가 미비한 상태다. 향후 한국도 PIA의 범위를 민간까지 확대하고, 평가 결과에 따른 실질적 조치 의무를 강화해야 한다. 또한 단지 평가서를 제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평가 자체가 개인정보 보호 시스템의 일환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법제도와 문화 양면에서 변화가 필요하다. 데이터는 단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감시하고 통제해야 할 공공 자산이자 책임의 대상이라는 인식 전환이 그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