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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보호 시리즈

한국의 개인정보 보호, 열람·정정 권리는 실효적인가?

by 250623 2025. 6. 27.

한국의 개인정보보호법은 이용자에게 ‘개인정보 열람·정정·삭제 요청권’을 명시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법적 권리가 실제로 서비스 이용 환경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사용자는 자신의 정보를 열람하거나 수정하려 할 때, 절차가 복잡하거나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 경험을 자주 겪는다. 특히 민간 플랫폼이나 대기업 웹사이트에서는 형식적 절차만 마련해 두고 실질적인 응답이나 처리 시스템은 부실한 경우가 많다. 이 글에서는 한국에서 개인정보 열람·정정 요청이 실제로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 법률과 현실 간의 차이를 구체적인 사례를 중심으로 분석한다.

 

법적으로 보장된 개인정보 권리와 요청 절차

개인정보보호법 제35조는 정보 주체가 본인에 대한 개인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제36조에서는 정정 및 삭제를 요구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이는 공공기관만 아니라 민간사업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며, 기업은 정보 주체의 요청에 따라 지체 없이 열람 또는 정정 조치를 취해야 한다. 요청이 정당한 경우 이를 거부할 수 없으며, 부득이한 경우 거부 사유를 명확히 고지해야 한다. 또한 요청에 대한 처리 결과는 서면 또는 전자문서 등으로 통보해야 하며, 처리 이력은 기업 내부에 기록되어야 한다.

법률상 요청 방법은 비교적 단순하다. 대부분의 기업은 고객센터나 개인정보 처리 방침 페이지에 ‘개인정보 열람/정정 요청’ 항목을 포함해야 하며, 사용자는 이를 통해 본인의 이름, 연락처, 요청 항목을 입력해 요청을 진행할 수 있다. 그러나 실무에서는 이 절차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거나, 형식적으로만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많은 기업이 ‘1:1 문의’ 메뉴만 제공하며, 별도의 요청 양식이나 전용 처리 채널이 없다. 이 경우 사용자는 어떤 항목을 어떻게 요청해야 하는지 알 수 없고, 처리 여부에 대한 안내도 받기 어렵다.

 

실무 현실: 응답 지연, 요청 무시, 형식적 처리

한국의 많은 온라인 플랫폼과 웹사이트는 개인정보 열람 및 정정 요청에 대한 실질적인 응답 체계가 부족하다. 한 예로 대형 쇼핑몰에서 개인정보 열람 요청을 했을 때, 담당 부서가 없다는 이유로 고객센터가 단순 회신만 반복하거나, “해당 요청은 처리 대상이 아닙니다”라는 식의 형식적 거절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사용자가 법적 권리를 근거로 재차 요청하면, 3~4일 후 이메일로 일부 항목을 제공하거나 ‘현재 제공할 수 있는 정보는 없다’고 답변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또한 정보 주체의 권리를 제한하는 내부 규정이나 시스템 구조도 문제다. 예를 들어 일부 플랫폼은 "기술적으로 회원 정보는 DB에서 완전히 삭제할 수 없다"는 이유로 열람 및 정정을 제한하거나, “계정 삭제를 요청하면 모든 기록이 삭제돼 열람이 불가능하다”는 이율배반적 안내를 제공한다. 이는 법적으로 정당한 정보 주체의 권리를 시스템상 구현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며, GDPR이었다면 과징금 대상이 될 수 있는 수준의 문제다.

이외에도 사용자가 정정 요청을 하더라도 ‘입증자료를 첨부해야 한다’는 이유로 거절하거나, 처리 결과를 회신하지 않고 단순히 내부에서 변경만 하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한국의 서비스들은 법률이 명시한 열람·정정 권리를 형식적으로만 준수하고, 사용자 중심의 대응 체계나 명확한 통신 구조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

 

한국 공공기관과 민간기업 간의 처리 격차

공공기관의 경우, 개인정보 열람 및 정정 요청은 비교적 체계적으로 운영된다. 정부24, 국민신문고 등의 플랫폼을 통해 요청서를 접수하면, 담당 부서가 이를 검토한 후 열람 결과를 통지하며, 필요한 경우 정정도 이루어진다. 실제로 정부24에서 주민등록표 초본, 납세 기록 등의 열람 요청을 진행할 경우 처리 기간은 평균 3~5일이며, 통보 또한 전자문서 형태로 깔끔하게 이루어진다. 이는 공공기관이 행정 기준에 따라 문서화된 절차와 책임 체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간기업, 특히 대기업이 운영하는 포털, 쇼핑몰,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개인정보 요청이 ‘서비스 범위 외’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마케팅, 광고, CRM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는 기업들은 개인 사용자 단위의 요청에 대응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지 않다. 이에 따라 열람 요청을 하더라도 “당사는 열람 대상이 아닙니다”라는 회신을 받거나, 단순히 계정 정보 수준의 제한적 내용만 제공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일부 기업은 개인정보보호 담당자 연락처를 방침에 기재해 놓고도, 실제 연락이 닿지 않거나 자동 응답만 반복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격차는 제도적 공백보다는 감독기관의 실질적 집행력 부재와 기업의 자발성 부족에서 기인한다. 현재 한국의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위반 사항에 대해 과징금 부과 및 시정 조치를 할 수 있지만, 개별 사용자의 요청이 기업에 의해 무시되는 경우까지 추적하거나 제재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크다. 결국 민간에서 사용자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기 위해서는 법적 기준 이상의 윤리적 인식과 자율적 실천이 요구된다.

 

한국에서 개인정보 열람 및 정정 요구는 어떻게 처리되는지 법적 권리와 현실과의 비교

 

한국의 개인정보보호법은 열람·정정·삭제 등 정보 주체의 권리를 분명히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법의 존재가 곧바로 현실에서 권리의 실현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요청 절차가 명확하지 않거나, 기업이 응답하지 않거나, 사용자가 자신의 권리를 알지 못한다면 그 권리는 종이 위 권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유럽이 정보 주체 권리를 시스템 중심으로 운영하고, 그에 맞춰 기술·조직적 대응을 갖춘 것과 달리, 한국은 아직도 ‘사용자가 요청하지 않으면 넘어가도 된다’는 관행이 남아 있다.

실질적인 권리 실현을 위해서는 ▲전용 요청 시스템 마련, ▲정확한 고지와 안내, ▲사용자 응답 체계 강화, ▲감독기관의 실시간 제재 시스템 구축이 병행되어야 한다. 정보 주체의 권리는 단지 기업을 위한 의무 사항이 아니라, 디지털 사회에서 사용자 신뢰를 얻는 핵심 전략이자 브랜드의 신뢰 기반이다. 이제는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법이 아니라, 그 권리를 어떻게 실행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구현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특히 문제는 기업들이 열람·정정 요청을 받았을 때 이를 내부적으로 어떻게 분류하고, 어느 부서가 처리하며, 어떤 형태로 기록하는지에 대한 표준화된 매뉴얼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어떤 기업은 요청 메일을 마케팅 부서가 받아보기도 하고, 어떤 기업은 CS팀이 응답을 대행하기도 한다. 이는 민감한 개인정보 처리에 있어 법적 책임 소재가 모호해지고, 사용자 입장에서도 일관성 없는 대응을 겪게 되는 구조를 만든다. 유럽은 이를 막기 위해 ‘DPO(데이터 보호 책임자)’ 제도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DPO의 실질적 역할이 형식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또 하나의 문제는 사용자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권리 행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매우 낮다는 점이다. 많은 사용자가 개인정보 요청을 “귀찮은 일”, “기업이 절대 안 해줄 것 같은 일”로 여긴다. 이는 기업의 불친절한 대응도 원인이지만, 개인정보 보호 교육이나 시민 인식 수준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업이 실무적으로 열람 요청을 처리하는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정기적으로 사용자에게 권리 행사 방법을 안내하는 것만으로도 신뢰 기반을 구축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법적 기준이 강제력을 갖기 위해서는 감독기관이 보다 적극적인 집행 시스템을 갖추고, 사용자 신고가 실질적인 조치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사용자 권리 요청에 대한 기업의 처리율을 투명하게 공개하거나, 일정 기준 이상 거부한 기업을 공표하는 시스템도 고려할 수 있다. 지금처럼 사용자 민원이 많아져야 감독기관이 움직이는 수동적인 구조로는 정보 주체 권리가 자동화된 데이터 흐름을 따라가기 어렵다.

결국 ‘정보 주체 권리’는 법률이 보장하고 있는 만큼, 기업이 실무적으로 준비하고, 사회가 문화를 형성하며, 사용자가 인지하고 행사하는 3가지 요소가 함께 작동해야 실현된다. 지금의 한국은 이 3요소 중 기업의 준비와 사용자의 인지 측면이 가장 약한 상태다. 앞으로 개인정보 보호가 진정으로 작동하는 디지털 사회를 원한다면, 열람·정정 요청은 단지 예외적 민원 처리가 아닌, 모든 사용자가 일상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기본 권리로 자리 잡도록 구조를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