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은 이제 공공행정, 의료, 금융, 마케팅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AI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양의 데이터, 특히 개인의 민감한 정보들이 사용되며, 그 과정에서 프라이버시 침해와 알고리즘 편향, 책임 소재 불분명 같은 문제가 계속 제기되고 있다. 유럽은 이러한 AI 기술의 확산 속에서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GDPR뿐 아니라 AI 법(AI Act), 가이드라인, 윤리 기준 등을 제도화해 가며 사전 예방 중심의 규제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AI 기술을 산업 육성 중심으로 접근하고 있으며, 개인정보 보호와 알고리즘 투명성은 여전히 ‘논의 중’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번 글에서는 AI가 개인정보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유럽과 한국이 이를 어떻게 법적으로 다루고 있는지를 비교하고, 앞으로 AI 시대의 개인정보 보호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찰한다.
AI는 어떻게 개인정보를 활용할까?
AI 기술은 본질적으로 ‘학습’을 기반으로 한다. 이 학습의 핵심 자원은 바로 데이터이며, 그중에서도 실제 사용자의 행동, 선택, 반응을 포함한 개인정보성 데이터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음성인식 AI는 수백만 건의 음성 데이터를 학습해야 하고, 이미지 인식 AI는 얼굴, 신체, 표정 등의 정보가 포함된 데이터를 사용한다. 추천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클릭 패턴, 위치 정보, 검색 기록, 구매 이력 등을 학습하여 개인화된 결과를 제공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AI는 사용자의 식별 가능성이 있는 데이터를 반복적으로 수집하고 분석하며, 데이터 간 연계를 통해 정보주체가 제공하지 않은 정보까지 예측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활용이 명시적 동의 없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고, 또한 AI가 생성하는 결과물의 편향이나 오류가 데이터 자체의 불완전성에 기인함에도 불구하고,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데 있다. 즉, AI는 그 자체로 개인정보를 ‘직접 유출’ 하지 않더라도, 프라이버시 침해를 간접적으로 일으킬 수 있는 잠재적 위험 구조를 내포하고 있다.
유럽의 법적 대응: GDPR + AI 법(AI Act)의 이중 보호
유럽연합(EU)은 AI가 개인정보를 활용하거나 판단에 개입할 경우, 사용자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두 가지 핵심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첫 번째는 GDPR이며, 두 번째는 2024년 3월 유럽의회에서 통과된 AI 법(AI Act)이다.
-GDPR의 적용
GDPR은 제22조에서 자동화된 의사결정 및 프로파일링에 대해 정보주체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AI가 사용자의 신용, 채용, 보험료 산정, 법적 처우 등에 관여할 경우, 사용자는 이에 대해 설명을 요구하고 인간 개입을 요청할 권리가 있다. 또한, AI가 학습한 데이터가 개인정보에 해당할 경우, AI 개발자는 반드시 수집 목적, 보유 기간, 처리 방식, 삭제 권한 등을 명확히 고지하고, 정보주체의 명시적 동의를 받아야 한다.
-AI 법(AI Act)의 도입
EU는 AI 기술의 위험 수준에 따라 4단계(금지–고위험–제한–일반)로 분류하고, 각 등급에 따라 법적 요건을 달리 적용하는 AI 법을 제정했다. 고위험 AI에는 신용 평가, 이력서 분석, 감시 시스템, 의료 판단 시스템 등이 포함되며, 이러한 시스템은 투명성, 기록 보관, 설명 가능성, 인간의 개입 가능성을 법적으로 충족해야 한다.
예를 들어, 채용 AI가 사용자의 지원 서류를 분석해 점수를 매기고, 일정 기준 미달자는 자동 탈락 처리하는 경우, 이는 고위험군에 해당하며, 사전 평가, 데이터 정당성 검토, 인간의 감독 체계가 없으면 법 위반이 된다. 또한 AI 시스템이 얼굴 인식 기반 감시를 수행할 경우, 해당 기술은 공공 공간에서는 원칙적으로 금지되거나 엄격한 예외 조항 하에서만 사용 가능하다. 이처럼 유럽은 AI 기술의 발전을 수용하면서도, 프라이버시와 기본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이중 보호 시스템을 법제도 차원에서 구축하고 있다.
한국의 현실: 규제 공백과 산업 육성 우선 구조
한국은 AI 기술 발전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보고 있으며, 그에 따라 AI 규제는 육성 중심, 기술 촉진 중심으로 설계되고 있다. 2020년 발표된 AI 윤리기준은 가이드라인 수준이며, 법적 강제력은 없다. ‘설명 가능한 AI’, ‘책임 있는 개발’, ‘비차별’ 등의 원칙을 선언하고 있지만, 실제로 AI 시스템이 개인정보를 어떻게 활용하고, 어떤 위험이 있는지를 평가하는 법적 절차나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한국은 ‘AI 기본법’ 제정 논의가 국회에서 진행 중이지만, 산업계와 정부 간 입장 차이로 인해 제정이 지연되고 있으며, 그 내용도 유럽 AI법과 달리 위험 분류 체계나 사전 감독 시스템이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한국의 개인정보보호법은 AI 기술 자체를 규제하는 조항이 없으며, AI가 개인정보를 학습하거나 예측에 사용하더라도 개인정보 수집 동의 여부, 자동화된 결정에 대한 사용자 권리 등에 대해 명확한 규정을 두지 않는다. 이로 인해 한국에서는 AI가 민감한 정보를 활용하거나 자동 판단을 내려도, 정보주체는 그 사실을 알거나 이의를 제기할 방법이 없는 구조다.
사용자 권리 보장 장치의 유무
유럽은 정보주체가 자신의 데이터가 AI에 의해 활용되었는지를 알고, 이에 대해 설명을 요구하고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 또한 알고리즘이 결정한 결과에 대해 인간의 재검토를 요구할 수 있는 ‘인간 개입권(Human Intervention Right)’도 보장한다. 이에 따라 유럽 기업들은 AI 개발 시 데이터 처리 과정을 문서화하고, 사용자가 질문할 경우 이에 응답할 수 있도록 기술·법적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반면 한국은 AI에 의한 판단 결과가 제공되더라도, 그 과정에서 어떤 데이터가 사용되었는지, 어떤 방식으로 처리되었는지, 누가 책임을 지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도 법적 문제가 없다. 실제로 채용 AI, 금융 AI, 쇼핑 AI 등이 사용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동 판단을 내리고 있지만, 사용자는 이 과정을 알 권리도, 결과에 이의를 제기할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유럽은 AI 기술을 도입하되, 개인의 권리를 중심에 둔 구조로 설계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기술을 중심에 두고, 개인정보 보호는 부속 기능으로 취급하는 한계가 있다.
AI는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서, 개인의 삶, 기회, 권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되었다. 이제 더 이상 ‘AI가 알아서 결정하니까 믿자’는 논리가 통하지 않으며, 어떻게 학습하고, 어떤 판단을 내리며, 누가 책임지는가에 대한 명확한 법적 틀이 필요하다. 유럽은 GDPR과 AI 법을 통해, AI 시대에도 인간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이중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다. AI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프라이버시, 자율성, 공정성은 양보할 수 없는 사회적 가치로 간주되며, 법제도는 그 가치를 기술보다 앞에 둔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AI를 기술 또는 산업의 영역으로 보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개인의 정보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어떤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는지에 대한 공적 인식과 법적 보호가 부족하다. 이제는 한국도 기술 중심의 AI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 ‘AI 기술 발전’과 ‘개인정보 보호’는 양립할 수 없는 목표가 아니라, 함께 고려해야 할 필수 쌍이다. AI 시대의 진정한 경쟁력은 알고리즘의 성능이 아 니라, 인간의 권리를 어디까지 존중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이 바로, 개인정보 보호 관점에서 AI를 재정의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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